1. 개요
붉은목벌새는 몸무게가 동전 한 개 정도인 3~4g에 불과한 아주 작은 새예요.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여름을 나는 벌새는 사실상 이 한 종뿐이라, 미국 동부와 캐나다 남동부 사람들에게 벌새라고 하면 대개 이 새를 떠올려요. 수컷의 목에는 빛을 받으면 루비처럼 붉게 번쩍이는 깃털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이 작은 새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1초에 50번 넘게 날갯짓하며 공중의 한 점에 멈춰 떠 있을 수 있고, 뒤로도 날 수 있어요. 가을이 되면 몸무게를 거의 두 배로 불린 뒤 멕시코만을 쉬지 않고 건너 중앙아메리카까지 날아가는데, 바다 위 직선 거리만 800km 안팎에 이르는 경우도 있어요.
이 문서는 붉은목벌새를 중심으로 하면서, 벌새라는 무리 전체의 특징도 함께 소개해요. 벌새과에는 360종이 넘는 새가 있고, 모두 아메리카 대륙에만 살아요. 한국에는 야생 벌새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꽃 앞에 떠 있는 벌새를 봤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박각시라는 나방을 본 경우예요.
2. 이름과 분류

Henley Quadling · CC BY-SA 4.0
붉은목벌새의 학명은 Archilochus colubris로, 칼새목(Apodiformes) 벌새과(Trochilidae)에 속해요. 같은 속에는 미국 서부와 멕시코에 사는 검은턱벌새(Archilochus alexandri)가 있는데, 수컷의 목 깃털이 검은색과 보라색이라 쉽게 구별돼요. 두 종은 분포가 겹치는 미국 텍사스 일부 지역에서 드물게 잡종을 만들기도 해요.
속명 Archilochus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지만, 왜 이 이름을 붙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종소명 colubris는 18세기에 벌새를 가리키던 말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어원 역시 분명하지 않아요. 영어 hummingbird는 빠른 날갯짓에서 나는 붕붕거리는 소리(hum)에서 나왔어요.
한국어 벌새라는 이름은 꽃 사이를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벌을 닮아서 붙었어요. 붉은목벌새는 영어 이름을 그대로 옮긴 이름이에요.
2.1. 벌새과 한눈에 보기
벌새과는 새 가운데 종 수가 많은 과에 속하며, 360종 안팎이 알려져 있어요. 대부분은 남아메리카 북서부 안데스산맥 일대에 몰려 있고, 북쪽으로는 알래스카, 남쪽으로는 남아메리카 남단 티에라델푸에고까지 퍼져 있어요.
| 대표 종 | 특징 |
|---|---|
| 꿀벌벌새 | 쿠바 고유종, 몸길이 5~6cm·약 2g, 세계에서 가장 작은 새 |
| 큰벌새 | 안데스 산지, 몸길이 약 20cm·약 20g, 가장 큰 벌새 무리 |
| 칼부리벌새 | 몸보다 긴 부리를 가진 유일한 새 |
| 붉은목벌새 | 북아메리카 동부 유일의 번식 벌새 |
| 루퍼스벌새 | 알래스카~멕시코를 오가며 몸 크기 대비 가장 긴 이동을 하는 새 중 하나 |
가장 큰 벌새로 알려진 큰벌새는 최근 연구에서 번식지와 이동 습성이 다른 두 종으로 나눠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어요.
3. 진화
벌새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칼새예요. 둘 다 다리가 아주 짧고 날개가 비행에 특화되어 있어서 칼새목으로 함께 묶여요. 두 무리는 대략 4천만 년 전 무렵 갈라졌다고 추정돼요.
놀랍게도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벌새 화석은 아메리카가 아니라 유럽에서 나왔어요. 독일 남부의 약 3천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에우로트로킬루스(Eurotrochilus)는 이미 길고 가는 부리와 정지비행에 알맞은 날개 뼈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후 프랑스와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화석이 나왔어요. 즉 벌새의 조상은 한때 구대륙에 살았고, 어떤 이유로 그곳에서는 사라진 뒤 아메리카에서만 살아남아 크게 번성한 것으로 보여요.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지금의 벌새 무리는 약 2천만 년 전 무렵 남아메리카에 자리 잡은 뒤 빠르게 다양해졌어요. 특히 안데스산맥이 솟아오르면서 고도에 따라 다양한 서식지와 꽃이 생겨났고, 벌새는 그 꽃들과 함께 진화하며 수많은 종으로 갈라졌어요. 꽃의 모양과 벌새 부리의 길이·굽은 정도가 서로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공진화의 대표적인 예로 들어요. 붉은목벌새가 속한 무리는 비교적 나중에 북아메리카로 진출한 계통이에요.
4. 분포와 서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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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목벌새는 여름에 북아메리카 동부 거의 전역에서 번식해요. 남쪽으로는 미국 플로리다와 텍사스 동부, 북쪽으로는 캐나다 남부의 앨버타 동부에서 노바스코샤까지 퍼져 있고, 서쪽으로는 대평원 동쪽 끝까지 나타나요.
겨울에는 멕시코 남부에서 중앙아메리카의 파나마 서부에 이르는 지역으로 내려가요. 일부는 미국 플로리다 남부나 멕시코만 연안에서 겨울을 나기도 해요.
서식지는 낙엽수림과 혼효림의 가장자리, 숲속 빈터, 과수원, 정원, 공원처럼 꽃이 많고 나무가 적당히 있는 곳이에요. 사람이 사는 교외 지역에도 잘 적응해서, 꽃밭과 먹이통이 있는 정원은 이 새의 중요한 여름 식당이 되어 있어요. 겨울을 나는 열대 지역에서는 건조한 숲, 관목지, 농경지 주변에서 주로 볼 수 있어요.
5. 신체 특징
| 항목 | 수치 |
|---|---|
| 몸길이 | 약 7~9cm |
| 날개 편 길이 | 약 8~11cm |
| 몸무게 | 약 2.5~4g(이동 직전 최대 6g 안팎) |
| 날갯짓 | 정지비행 때 초당 약 50~60회 |
| 심장 박동 | 활동 시 분당 1,000회 이상 |
| 체온 | 활동 시 약 40℃, 휴면 때 크게 낮아짐 |
등은 반짝이는 금속성 초록색이고, 배는 회백색이에요. 수컷은 목에 붉은 깃털이 있는데, 이 색은 색소가 아니라 깃털 미세 구조가 빛을 반사해 만드는 구조색이라 빛이 정면에서 비칠 때만 선명한 루비색으로 보이고 각도가 바뀌면 거의 검게 보여요. 암컷은 목이 희고 꼬리 끝에 흰 점이 있으며, 수컷보다 약간 커요.
벌새의 몸은 비행을 위해 극단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날개를 움직이는 가슴 근육이 몸무게의 4분의 1 안팎을 차지하고, 어깨 관절이 독특하게 회전할 수 있어서 날개를 앞뒤로 8자 모양을 그리며 휘저어요. 덕분에 날개를 앞으로 칠 때와 뒤로 칠 때 모두 양력을 만들어 공중에 멈출 수 있어요. 반면 다리는 너무 짧고 약해서 걷거나 뛰지 못하고, 횃대에 앉았다가 옆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정도만 할 수 있어요.
부리는 가늘고 곧으며, 그 속에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긴 혀가 들어 있어요. 눈은 머리 크기에 비해 크고,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까지 볼 수 있어요.
6. 생태와 습성

붉은목벌새는 혼자 생활하는 새예요. 짝을 이뤄 함께 사는 일이 없고, 수컷과 암컷은 짝짓기할 때만 잠깐 만나요. 수컷은 꽃이 많은 장소나 먹이통 주변을 자기 영역으로 삼아 다른 벌새가 오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쫓아내요. 작은 몸집으로 자기보다 훨씬 큰 새나 다람쥐에게까지 달려드는 모습이 자주 관찰돼요.
벌새의 하루는 먹는 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몸이 작고 대사율이 매우 높아서 낮 동안 10~15분마다 꿀을 먹어야 하고, 하루에 수백~천여 송이의 꽃을 방문한다고 해요. 사람으로 치면 엄청난 양의 음식을 쉬지 않고 먹어야 하는 셈이에요.
밤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휴면(토퍼) 상태에 들어가요. 체온을 평소보다 훨씬 낮추고 심장 박동과 호흡을 크게 줄여서, 잠깐 동안 거의 동면하는 것처럼 지내요. 아침이 되면 몸을 떨어 체온을 다시 올리는 데 수십 분이 걸리기도 해요.
6.1. 멕시코만을 건너는 대이동
붉은목벌새의 이동은 동물계에서 가장 놀라운 여행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늦여름이 되면 벌새는 꿀과 곤충을 엄청나게 먹어 몸에 지방을 저장하는데, 며칠 사이에 몸무게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기도 해요. 그런 다음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상당수는 미국 남부 해안에서 출발해 멕시코만을 가로질러 유카탄반도까지 한 번에 날아가는 것으로 여겨져요. 바다 위에는 쉴 곳도, 먹을 꽃도 없기 때문에 저장한 지방만으로 버텨야 해요.
일부는 텍사스 해안을 따라 육지 위로 돌아가는 경로를 택하는데, 개체와 날씨에 따라 어떤 길을 고르는지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에요. 봄에는 반대로 3~5월에 북쪽으로 돌아오며, 수컷이 암컷보다 먼저 번식지에 도착해 좋은 영역을 차지해요. 한 번 다녀간 정원이나 먹이통의 위치를 기억해 이듬해에도 찾아온다는 관찰도 많아요.
7. 먹이
벌새는 꽃꿀을 먹는 새로 유명하지만, 꿀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꿀은 비행에 필요한 당분을 공급하는 연료이고, 몸을 만드는 단백질과 지방은 작은 곤충과 거미에서 얻어요. 붉은목벌새는 공중에서 날벌레를 낚아채거나,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빼먹거나, 나뭇잎 표면의 진딧물을 쪼아 먹어요. 새끼를 키우는 암컷은 특히 곤충을 많이 사냥해요.
붉은목벌새가 좋아하는 꽃은 붉은색이나 주황색의 관 모양 꽃이에요. 북아메리카의 트럼펫덩굴, 붉은 모나르다, 홍화 숫잔대, 인동덩굴류 같은 꽃이 대표적이에요. 이런 꽃은 벌이 잘 보지 못하는 붉은색을 띠고 향이 약하며 꿀이 깊숙이 들어 있어서, 벌새에게 맞춰 진화한 것으로 여겨져요. 꽃이 아직 피지 않은 이른 봄에는 딱따구리의 일종인 수액빨이딱따구리가 나무에 뚫어 놓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을 먹기도 해요.
벌새의 혀는 오랫동안 빨대처럼 꿀을 빨아들인다고 여겨졌어요. 하지만 고속 촬영 연구를 통해, 혀끝의 갈라진 가장자리가 꿀 속에서 펼쳐졌다가 입으로 들어올 때 오므라들며 꿀을 가두는 방식, 그리고 혀가 눌렸다 펴지면서 꿀을 빨아올리는 작은 펌프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이 과정이 1초에 십여 번씩 반복돼요.
정원에 벌새 먹이통을 다는 북아메리카 가정이 많아요. 보통 흰 설탕과 물을 1대 4 비율로 섞어 쓰고, 꿀이나 인공 색소는 넣지 않으며,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며칠마다 깨끗이 씻어 교체하는 것이 권장돼요.
8. 번식과 일생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암컷 앞에서 U자 모양의 큰 궤적을 그리며 오르내리는 구애 비행을 해요. 높이 올라갔다가 급강하하면서 날개에서 윙윙 소리를 내고, 암컷 앞에서는 좌우로 짧게 왕복하는 비행을 보여 줘요.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은 떠나고, 둥지 짓기부터 새끼 키우기까지 모든 일을 암컷 혼자 맡아요.
둥지는 호두 껍데기 정도 크기의 작은 컵 모양이에요. 암컷은 엉겅퀴나 민들레의 솜털 같은 부드러운 식물 섬유를 모아 거미줄로 엮고, 바깥쪽에는 지의류 조각을 붙여 나뭇가지의 혹처럼 보이게 위장해요. 거미줄은 신축성이 있어서 새끼가 자라면 둥지도 함께 늘어나요.
| 단계 | 기간 | 특징 |
|---|---|---|
| 둥지 짓기 | 약 6~10일 | 암컷 혼자 거미줄과 식물 솜털로 만듦 |
| 산란 | 보통 2개 | 콩알만 한 흰 알, 하루 이틀 간격 |
| 알 품기 | 약 12~14일 | 암컷만 품음 |
| 둥지 속 새끼 | 약 18~22일 | 암컷이 꿀과 곤충을 토해 먹임 |
| 첫 번식 | 다음 해 봄 | 생후 1년이면 번식 가능 |
남쪽 지역에서는 한 해에 두 번 번식하기도 해요. 야생에서 평균 수명은 3~5년 정도로 추정되고, 가락지 조사에서는 9년 넘게 산 암컷이 확인된 기록이 있어요.
9. 지능·의사소통·특별한 능력
벌새의 뇌는 쌀알만큼 작지만 몸무게에 비하면 새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해요. 특히 공간 기억과 관련된 해마 부위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능력은 먹이 찾기에 그대로 쓰여요. 실험에 따르면 벌새는 어떤 꽃을 언제 방문했는지 기억하고, 꿀이 다시 차오를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경향을 보였어요. 이미 꿀을 빨아 먹은 꽃을 피하고 새 꽃을 찾아가는 것도 이런 기억 덕분이에요.
벌새의 시각도 특별해요. 사람의 눈에는 빨강, 초록, 파랑을 감지하는 세 가지 원뿔세포가 있는데, 벌새는 여기에 자외선을 감지하는 원뿔세포까지 네 종류를 가지고 있어요. 야외 실험에서 벌새는 자외선과 초록빛이 섞인 색처럼 사람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색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붉은목벌새는 노래하는 새가 아니어서 찍찍, 짹짹 하는 짧은 소리를 내는 정도예요. 대신 날갯짓 소리가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해요. 다 자란 수컷의 바깥쪽 날개깃은 끝이 좁아서 날 때 더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로 경쟁자를 위협하거나 암컷에게 자신을 알린다고 여겨져요.
비행 능력은 벌새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예요. 공중 정지, 후진 비행, 옆으로 미끄러지기, 심지어 잠깐 거꾸로 뒤집히기까지 할 수 있어서, 공학자들이 소형 드론을 설계할 때 벌새의 날갯짓을 연구하기도 해요.
10. 천적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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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작아서 생각지 못한 천적이 많아요. 아메리카황조롱이나 작은 매류, 고양이 같은 일반적인 포식자 외에도, 사마귀가 꽃이나 먹이통 근처에 숨어 있다가 벌새를 잡는 사례가 여러 차례 기록됐어요. 커다란 거미의 거미줄에 걸리거나, 물가에서 개구리나 물고기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있어요. 둥지의 알과 새끼는 어치, 다람쥐, 뱀이 노려요.
벌새의 가장 큰 무기는 빠르고 예측하기 어려운 비행이에요. 위험을 느끼면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사라지고, 암컷은 둥지를 잘 위장해서 포식자의 눈을 피해요.
하지만 자연 천적보다 더 큰 위험은 이동 중의 악천후와 사람이 만든 환경이에요. 멕시코만 위에서 강한 맞바람을 만나면 지방이 바닥나 바다에 떨어질 수 있고, 유리창 충돌, 살충제로 인한 곤충 감소, 서식지 파괴도 위협이 돼요.
11. 인간과의 관계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벌새는 오래전부터 특별한 존재였어요. 아스테카의 전쟁과 태양의 신 우이칠로포치틀리의 이름은 남쪽의 벌새 또는 왼쪽의 벌새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전사가 죽으면 벌새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전해져요.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의 여러 부족 설화에서도 벌새는 불이나 담배를 가져다준 용감한 새로 등장해요.
어두운 역사도 있어요. 19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반짝이는 벌새 깃털과 박제가 여성 모자와 장신구, 실내 장식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남아메리카에서 수많은 벌새가 사냥되어 수출됐어요. 이런 무분별한 깃털 거래에 대한 반발은 미국과 영국에서 조류 보호 운동이 시작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오늘날 붉은목벌새는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원 새 가운데 하나예요. 벌새가 좋아하는 꽃을 심고 먹이통을 다는 일이 하나의 취미 문화로 자리 잡았고, 봄마다 시민들이 첫 도착 날짜를 기록해 이동 지도를 만드는 시민 과학 활동도 활발해요.
한국과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지만, 한국 사람들이 벌새를 봤다고 착각하는 일이 아주 흔해요. 여름 저녁 꽃 앞에서 공중에 멈춘 채 긴 주둥이로 꿀을 빠는 작은 생물은 대부분 꼬리박각시나 줄박각시 같은 박각시과 나방이에요. 더듬이가 있고 다리가 여섯 개라는 점을 보면 구별할 수 있어요.
12. 보전 현황
붉은목벌새는 IUCN 적색목록에서 관심대상(LC)으로 평가돼요. 번식 분포가 매우 넓고, 북아메리카 조류 모니터링 자료로 보면 전체 개체 수는 수천만 마리 규모로 추정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거나 오히려 조금 늘어난 것으로 보고돼요. 다만 정확한 숫자는 조사 방법에 따라 차이가 커요.
그럼에도 걱정되는 요소는 있어요. 기후 변화로 꽃이 피는 시기가 앞당겨지면 벌새가 도착하는 시기와 어긋날 수 있고, 살충제 사용으로 새끼에게 먹일 곤충이 줄어들 수 있어요. 겨울을 나는 중앙아메리카의 숲이 농지로 바뀌는 것도 위협이에요.
법적으로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철새 보호 조약에 따라 보호를 받아, 허가 없이 잡거나 기르거나 둥지와 알, 깃털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돼요. 또한 벌새과의 거의 모든 종은 국제적 멸종위기종 교역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 II에 올라 있어 국제 거래가 규제돼요. 한국에서도 CITES 대상 종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수출입에 허가가 필요해요.
벌새과 전체로 보면 사정은 훨씬 심각해요. 남아메리카의 좁은 산지나 섬에만 사는 종 가운데 상당수가 서식지 파괴 때문에 위기종이나 위급종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13. 동물원과 사육 시설에서
벌새는 사육하기 매우 어려운 새예요. 계속 꿀과 곤충을 공급해야 하고, 넓은 비행 공간과 적절한 온도·습도,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을 꾸준히 준비해야 해요. 그래서 벌새를 전시하는 곳은 열대 식물을 가득 심은 대형 온실형 조류관을 갖춘 일부 동물원과 식물원 정도예요. 이런 시설에서는 사육 상태의 번식 기록을 통해 벌새의 성장과 대사에 관한 귀중한 자료가 쌓이기도 했어요.
개인이 벌새를 기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이에요. 벌새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면 원산지에서 정원 먹이통이나 꽃을 통해 야생 벌새를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다친 벌새를 발견했을 때도 직접 돌보기보다 허가받은 재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해요.
14. 대중문화 속 벌새
- 페루 남부 사막의 나스카 지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 하나가 거대한 벌새 모양이에요. 길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러 하늘에서 봐야 전체 모습이 보여요.
-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벌새의 땅이라는 별명이 있고, 국가 문장에도 벌새가 들어가요. 자메이카는 긴 꼬리를 가진 붉은부리흰꼬리벌새를 국조로 삼고 있어요.
- 한국에서는 2018년 김보라 감독의 장편 영화 벌새가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중학생 소녀의 성장 이야기로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어요. 제목의 벌새는 작지만 쉬지 않고 날갯짓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쓰였어요.
- 남아메리카 설화에서 숲에 불이 났을 때 작은 벌새가 부리로 물 한 방울씩 날라 불을 끄려 했다는 이야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메시지로 환경 운동에서 자주 인용돼요.
- 미국 남부와 동부 여러 지역에서는 봄과 가을에 벌새 축제가 열리고, 가락지 달기 행사로 시민들이 벌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요.
15. 여담
- 붉은목벌새는 비행 중 호흡이 분당 200~250회에 이를 정도로 빨라요.
- 벌새의 알은 콩알 정도 크기지만, 엄마 몸무게에 비하면 상당히 큰 편이에요.
- 벌새는 진화 과정에서 단맛을 느끼는 감각을 새로 얻었어요. 원래 칼새와 같은 조상은 감칠맛 수용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벌새에서는 이 수용체가 바뀌어 당분을 감지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어요.
- 먹이통에 붉은 색소를 넣을 필요는 없어요. 먹이통 자체에 붉은 부분이 있으면 벌새가 충분히 알아봐요.
- 붉은목벌새 수컷은 번식지에 도착하면 몇 주 만에 다시 남쪽으로 떠나기도 해서, 늦여름 먹이통에는 암컷과 어린 새만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 한국에는 벌새가 없지만, 외국 자연 다큐멘터리 덕분에 벌새는 한국 어린이들에게도 가장 작은 새로 친숙해요.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니에요. 포획·거래·사육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연락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한국에서도 벌새를 볼 수 있나요?
야생 벌새는 아메리카 대륙에만 살아요. 한국에서 꽃 앞에 떠 있는 벌새처럼 보이는 생물은 대부분 꼬리박각시 같은 박각시과 나방이에요. 더듬이와 다리 여섯 개로 구별할 수 있어요.
작은 몸으로 어떻게 바다를 건너나요?
이동 전에 꿀과 곤충을 잔뜩 먹어 지방을 저장하고 몸무게를 거의 두 배까지 늘려요. 이 지방을 연료로 멕시코만 수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날아가요.
벌새 먹이통에는 무엇을 넣나요?
원산지에서는 흰 설탕과 물을 1대 4로 섞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꿀이나 붉은 색소는 넣지 않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며칠마다 씻어 교체해야 해요.
사진 출처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의 자유 이용 허락 사진이에요. 각 사진의 작가와 라이선스는 아래와 같아요.
- Composite-ruby-throated-hummingbird.jpg — Gary Bridgman · CC BY 2.5
- Ruby-Throated Hummingbird.png — Henley Quadling · CC BY-SA 4.0
- Ruby-throated Hummingbird, Macdonald, Meredith and Aberdeen Additional, ON, Canada imported from iNaturalist photo 314800928 (cropped).jpg — no rights reserved · CC0
- Ruby-throated Hummingbird (Archilochus colubris) RWD4.jpg — Dick Daniels (http://carolinabirds.org/) · CC BY-SA 3.0
- Ruby-throated hummingbird (Archilochus colubris) female Palopo.jpg — Charles J. Sharp · CC BY-SA 4.0
- Ruby-throated hummingbird on nest 01.jpg — Lorie Shaull · CC BY-SA 4.0



